시인의 창

[스크랩] [현대시감상] 김기림

이사임당 2010. 11. 2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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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 기림 연보

1908 함북 학성 출생

1921 서울 보성고보 중퇴

1930 일본대학(日本大學)문학예술과 졸업.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발표,등단

1931 {조선일보} 평론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 발표. 본격적인 평단활동 시작

1933 이효석. 조용만. 박태원 등과 [구인회] 결성

1936 첫시집 {기상도}(자가본) 간행

1939 시집 {태양의 풍속}(학예사) 간행

1945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활동 주도

1946 시집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간행. 평론집 {문학개론}(문우인서관) 간행

1947 평론집 {시론}(백양당) 간행

1948 시집 {새노래}(아문각) 간행. 수필집 {바다와 육체}(평범사) 간행

1949 평론집 {시의 이해}(을유문화사) 간행

1950 6.25중 납북

1988 {김기림전집}(심설당) 전6권 간행




[김 기림론] 모더니즘의 한국적 전개 < 박 철희 > = 문학평론가/서강대교수 =

한국 시사에 있어서 1930년대초 모더니즘 운동은 한국시의 현대적 전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1920년대 전반기 시의 감상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역이자, 시적 구조(명징한 지성)에 대한 새로운 욕구다. 이러한 반역과 욕구가 20년대 전반기 감상시만이 아니라 후반기 편 내용주의의 시까지 포함한다고 하면, 그에 대한 반명제로 모더니즘의 건설과, 그 옹호를 그 무엇보다도 강조한 김 기림의 이른바 모더니즘 운동이 당시 시의 순수운동을 표방한 시문학파운동과 함께 한국 시사에 차지하는 의의는 자못 큰 것이다. 김 기림에 의해 강조된 이른바 모더니즘 운동은 이렇듯 낭만주의의 병적 감상성과 경향파의 정치적 관념성의 부정에서 비롯한다. 그리하여 시의 건강성, 명징성, 조소성을 시의 <현대성>을 위한 시적 징표로 내세웠다. 이런뜻에서 김 기림이야말로 한국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당대의 가장 전위적인 이론가였던 셈이다. 그만큼 그의 시론은 질 양 양면에 있어서 아주 괄목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김 기림 또한 이론가로서의 활동 못지 않게 그의 시작은 한결 더 정력적이고 생산적이었다.

{태양의 풍속} {기상도} {바다와나비} {새노래} 등의 시집이 보여주듯이 1930년 이후 6725사변 때 그가 납북되기 전까지 20여 년을 지속적으로 작품활동을 해왔으며, 그 작품수 또한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과 비교할 때 방대한 분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구시와 시론과 접촉하면서 이루어진시와 시론, 그 중에서도 시가 시론보다 서구적 자극 못지않게 전통에 대하여 유념하고 있었다. 서구적인 <새로운 세계>에 매료되어 전통과 무관한지대에서 작업하면서도 그 지대를 다시금 전통과 맞물리게 하는 반작용 시의 <현대성>을 빚어내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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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림의 시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동경에서 비롯한다. 1930년 9월 6일자 {조선일보}에 G.W.의 필명으로 발표된 그의 첫작품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부터 그의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과 심취는 압도적이다. 그만큼 그의 초기시, 특히 시집 {태양의 풍속}을 특징짓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현실안은 철저히 서구지향적이며 문명지향적이다. 이러한 서구지향 문명지향이 그가 처음에 생각한 모더니즘에 틀림없다. {태양의 풍속}의 시편들은 한결같이 <태양> <아침> <바다>의 이미지를구심점으로 해서 모든 시작품에 메아리쳐 있다. <태양> <아침> <바다>는 <새로운 생활>을 이루는 대표적 이미지다. 그러기에 <새로운 생활>을 위하여 <어둠> <밤> <벽>은 전면적으로결별되어야 할 세계다. 시집 {태양의 풍속}의 서문과 같이 <비만(肥滿)하고 노둔(魯鈍)한 오후의 예의>다. 그것은 <동양적 적멸>이며 <무절제한 감상의 배설>이며 또한 <탄식>이다. 그래서 <밤>은 <새벽을 꾸짖는 사형수인 늙은세계>([십오야(十五野)])이며, <어둠>은 태양의 <풍속을 좇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여야 할 세계라고 절규([태양의 풍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새로운 생활>은 <건강한 아침의 체격>이자 <오전의 생리>다. <아침> <태양> <바다>는 그러므로 신선 활발 대담 명랑 건강의 이미지다. 하지만 <새로운 생활>을 위하여 <아침> <태양> <바다>보다 오히려 <밤> <어둠> <벽>을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모순, <밤><어둠> <벽>을 노래함으로써 <아침> <태양> <바다>를 구현한 역설, 이러한 모순과 역설로 이루어진 시가 그가 {조선일보}학예부 기자로 재직할 때 쓴 그의 초기 시편이며. 시[가거라 새로운 생활로]이다. 이 시를 시집 {태양의 풍속}에서 [오후(午後)의 예의(禮儀)]편에 시인 자신이 넣은 것은 이 때문이다.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가 보여주듯이 <바빌론>으로 상징되는 문명세계에 대한 동경과 심취는 그만큼 각별하다. 사실 그의 이국적 기질은 너무나 강하다. 그곳은 아침이며 밝음이며 깃발의 세계다. 하지만 이곳은 밤이며 어둠이며 비탄과 울음의 세계다. [기차] [고독] [이방인] 등의 시가 그 시공을 밤과 어둠으로 선택했을 때, 그 세계는 눈물과 울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있어 <동양적인 적멸>이나 이곳의 과거는하루빨리 결별되고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태양의풍속}에 실린 시편들은 동양의 세계, 어둠의 세계로부터 결별과 강렬한 부정을 의미한다. [출발] [깃발] [바다의 아침] [일요일 행진곡(日曜日 行進曲)] 등 여행시는 <태양의 풍속>을 읊은 시다. 여행시는 말하자면 <새로운 생활>. 문명세계로 항해하기 위한 태양의 풍속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그에게 있어 시는 노래이기보다 인식이며 또한 인식의 기호론이다. 시는 스스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짓는 것이다. 시가 인식되었을 때, 시는 당시 감상주의와 편내용주의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20년대 전반기 시가 감상에 집착했을 때, 그는 단연코 시의 건강성으로서 지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감상과 지성의 대립은 다시 운율과 이미지로 대체된다. [대합실] [쵸코레 1트] [함흥평야] 등의 시에 나오는 이미지의 조형, 관념의 감각화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미지의 조형, 관념의감각화는 그것이 형식면에서 새로운 것을 갖추었다고 해도, 그것이 현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관념에서 온 것이다. 그만큼 타설적이고 관념적이다. 이들 시가 결국 기교주의적 말초화로 시종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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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교향악을 기획했다>고 스스로 표방한 장시 {기상도}는 시집 {태양의 풍속}의 시편이 보여주듯이 현실과 유리된 시의 관념적 세계에 대한스스로의 반성이자, <현실의 적극적 관심>에 부응한 구체적 표현이다. {기상도}는 그동안 그가 시도한 어떤 시보다 크고 넓은 세계이며, 현대문명의 상황을 비판한 의욕적이고 실험적인 시적 구조물이다. 현대문명은 그것에 걸맞는 시의 형태를 요구한다고 하면서 엘리어트의 [황무지], 스펜더의[비엔나]와 같은 장시를 그는 {기상도}에서 실험한 것이다. 그러기에 {기상도}를 발표한 1930년대 중반은 김 기림에 있어 모더니즘과 사회성의종합이라는 시의식의 변화를 보여준 주목할 만한 시기다. 그것은 말하자면 20년대 경향파와 모더니즘의 종합이었다. 그만큼 30년대 중반에서 모더니즘이 위기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경향파와 모더니즘의 종합이 낳은 시가 다름 아닌 {기상도}다. 시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기상도}는 현대사회의 어지러운 기상을 진단 비판한 자본주의 문명의 기상도이자 현실의 기상도이다. 다시 말하면 서구 현대문명의 내습을 태풍에 비유하고, 그것으로 인한 세계의 붕괴와 그 재생을주로 다루고 있는 우 의도적이고 의욕적인 문명비평시다.

비늘

돋친

해협(海峽)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두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幅)처럼 미끄러웁고

오만한 풍경(風景)은 바로 오천(午前) 칠시(七時)의 절

정(絶頂)에 가로누웠다

로 시작되는 {기상도}는 모두 424행의 장시로서 [세계(世界)의 아침] [시민행렬(市民行列)] [태풍의 기침시간(起寢時間)] [자취] [병(病)든 풍경(風景)] [올빼미의 주문(呪文)] [쇠바퀴의 노래] 등 7부로 이루어져 있다. 7부로 엮어진 이 시는 7부 각각이 <태풍>이라는 한 핵을 향해 수렴되고 긴밀하게 엮어지면서 유기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1부 [세계(世界)의 아침]과 이 시의 대단원인 7부 [쇠바퀴의 노래]는 그시적 구조가 시간상으로 원형을 보여주듯이 공간상 원형을 보여주고 있음을 놓칠 수 없다. 말하자면 구조상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이 시의 특

색이다. 1부 [세계(世界)의 아침]이 <새로운 생활>을 찾아 떠나는 모습이라면, 7부 [쇠바퀴의 노래]는 태풍을 거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생활>이 거듭남을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재생이자 쇄신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世界)의 아침]의 단순한 무조건적인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 [쇠바퀴의 노래]에 와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희망과 미래에의 믿음으로 바뀐 것이다. <우울과 질투와 분노와/끝없는 탄식과/원한의 장마에 곰팽이 낀/추근한 우비>는 벗어던지고 <날개와 같이/가벼운 태양의 옷>을 갈아입어도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시 {기상도}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3부[태풍의 기침시간(起寢時間)]을 구심점으로 해서 그 여파를 다룬 2부 [시민행렬(市民行列)]과 4부 [자취]라고 생각한다. 현대문명의 기상(위기)을 태풍의 기상 상황에 비유하여 현대문명의 위기로 인한 모순과 비리와 불합리를 비판하고 풍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시의 다양한 기법을 맘껏 실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풍자와 기법이 전통적 형식보다 서구적 형식이 크게 작용한 점에 있다. 그만큼 {기상도}는 그 형식과 내용이 {태양의 풍속}의 시편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서구지향적이며 문명지향적이다. 그의 시만이 아니라 {시론}이 그렇고. {문장론신강}이 그렇다. 더구나 <시대적 고민의 심각한 축도>라고 스스로 자처하면서, <현실에의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모더니즘 못지않게 시의 사회성을 강조했던 그가 {기상도}에서 보여준 사회는 1930년대 중반을 전후한 식민지 조선의 사회가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의 팽창과 대내외적 갈등과정에서 빚어낸 저쪽 지식인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의 시방법은 타설적일 수밖에 없고그 때문에 {태양의 풍속}의 시편과 결과적으로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다만 {태양의 풍속}이 현실에서 유리된 관념적 세계라면, {기상도}는 현실에의 적극적 관심의 소산이면서 그 현실은 한국적 리얼리티와 유리된 또 하나의 관념적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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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뜻에서 그후 김기림이 {새노래}에 와서 자기비판을 시도한 것은 여러 모로 그의 시적 변모를 이해하는 데 시사적이다. 물론 시는 <생활의현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의 소리>이어야 한다는 자각과 모더니즘에대한 이러한 자기비판은 이미 시집 {바다와 나비}에서 소리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태양의 풍속} {기상도} 이후 1939년 대전 발발까지 발표된 시가 바로 그것이다. [순교자] [요양원] [공동묘지] [유리창] [겨울의 노래] 등이 보여주듯이 그가 그동안 의욕했던 모더니즘의 탈지향성에서 남의 현실이 아닌 나의 현실, 말하자면 <시의 고향>으로 귀의한 것이다. [유리창] [공동묘지] 등이 환기하는 주정적이고 정감적인 세계는그 자체만으로 매력과 장점이 되어준다. 그것은 서구적인 경험에 입각하여짓고 노래하던 종래시에 대한 자기반성과 자기인식이며, 그러한 인식이 낳은시가 [바다와 나비]며 [겨울의 노래]다. [바다와 나비] [겨울의 노래]는 어떤 의미에서 시인의 자화상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지혜에게 바치는 노래]등 8715광복을 노래한 {바다와 나비}의 시편 등의 일부와 {새노래}의 시편들은 이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감수성이나 경험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보다 광복 후의 감격과환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시는 개인적인 것보다 우리라는 공동체 언어를 지향한다. 이제 모더니스트의 흔적은 깨끗이 지워지고 남은 것은 청중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자아내는 경향시(사회성)의 지향이다. 비록 이러한 시편들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주제로 나타

나 있다 하여도 그것은 내면의 필연성에서 오는 시인의 표현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시대적 요청에서 제작된 것이며 광복후의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부응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시 {태양의 풍속}이나 {기상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초기의주요 내용인 <서구문명숭배>가 <새나라 건설>로 바뀐 것이 다르다. 시집{새노래}의 첫머리에 샌드벅의 시구절 <나는 새도시와 새백성들을 노래하는걸세/참말이지 과거는 한줌 재일 따름>을 인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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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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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 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바다와 나비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여성](1939년 4월)

청무우 : 표준어는 '청무'

저러서 : 절어서

서거푼 : '서글픈'의 방언. 가엾고 초라한

<감상의 길잡이>(1)

시집 <바다와 나비>(1946)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벌써 피할 수 없는 '근대' 그것의 파산의 예고로 들렸으며 이 위기에 선 '근대'의 초극이라는, 말하자면 세계사적 번민에 우리들 젊은 시인들은 마주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작품이 바로 {바다와 나비}이다. 이 시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바다'와 '나비'가 갖는 상징일 터이다. '바다'는 수심(水深)도 알 길이 없고, 삼월에도 꽃이 피지 않는 무생명의 공간으로 나타나 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후 바다는 근대화 과정에서 겪어야 할 모험과 시련의 의미를 띠게 된다.

근대의 몰락을 예견하며 그것의 초극을 꿈꾸었던 김기림으로서도 현실적 상황의 열악함에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너무도 무력했던 것일까? 그가 제시한 것은 지친 한 마리 나비에 불과하다.

근대라는 엄청난 물결 앞에 무력함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던 30년대 후반 한국 모더니스트들의 자화상을 눈에 보는 듯하다.

이 작품에서도 한국 모더니즘 시의 회화적 특성과 문명 비판적 성격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푸른 바다에 대비되는 흰나비, 나비 허리에 걸린 새파란 초승달의 이미지는 그 회화적 특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특히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라는 구절은 문명의 무생명성 혹은 불모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 문명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감상의 길잡이>(2)

김기림은 1930년대 중반 이후 모더니즘 시론(특히 주지주의)의 수립과 시 창작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의 도입 등으로 시인으로서보다는 비평가로서의 업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김기림의 시는 어떤 사상적 깊이보다는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감각적 이미지만이 뚜렷하게 부각되는데, 이것은 모더니즘, 특히 이미지즘 계열시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그가 한때 T.S.엘리어트에 경도됨으로써 <기상도>등에서 자주 나타나던 생경한 외래어나 경박함이 사라진 대신, 견고하고 선명한 이미지 제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히 표현함으로써 비교적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월 바다의 푸른색과 흰나비, 그리고 새파란 초생달의 색채의 대비가 특히 두드러지는 이 시는, 간결한 이미지가 '- 다'로 끝나는 어조 속에서 그 냉정함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어서,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물결 사나운 바다에 나비를 대비시킨 김기림의 상상력은 신선하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S.스펜더의 <바다의 풍경> 3연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바다'는 삼월에도 꽃이 피어나지 않는 무생명의 공간으로 문명의 무생명성 내지 불모성을 상징한다. 그 곳을 '청무우 밭'으로 오해해서 내려갔다가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오'는 '흰나비'는 현실의 모진 세파(世波)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낭만주의적 존재로 어쩌면 김기림의 청년 시절 모습일지도 모른다.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후 '바다'는 근대화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모험과 시련, 또는 문명에 대한 동경을 상징하는 곳일 뿐 아니라, 1936년 29세의 나이로 시인으로서의 명성과 조선일보 기자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개 외국 문학도가 된 그의 낭만적 기질을 고려해 본다면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한한 바다와 한갓 미물에 불과한 흰나비의 대조를 통해서 시인은 역사 혹은 운명과 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는 표현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힘없이 날개만 파닥거리던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초라한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3)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孤掌難鳴)]는 속담이 있다. 혼자서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미 역시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기호론자(記號論者)들이 잘 인용하는 해골표를 두고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만약 해골 표시를 한 깃발이 길가에 꽂혀 있었다면 그것은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위험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바다의 배에 그런 기(旗)가 달려 있었다면 해적선이라는 전연 다른 의미가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작은 병에 해골 표시가 있으면 독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함부로 먹지 말라는 것이고, 큰 상자에 그런 표시가 달려 있었다면 방사성 물질이 담겨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가 될 것이다.

김기림(金起林)의 [바다와 나비]를 읽는데 있어서 실체론이 아니라 관계론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바다와 나비]라는 제목부터가 두 단어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비라고 하면 [탐화봉접(探花蜂蝶)]이란 숙어대로 꽃과 관계된 의미로 굳혀져 왔다. 그러나 그 틀을 깨고 꽃을 바다로 바꾸면 바다에도 나비에도 다같이 화학작용 같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나비와 꽃], [바다와 갈매기] 같이 굳은 살이 박힌 정형구에서는 도저히 지각(知覺)할 수 없었던 심상과 감동이 생겨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바다]와 [나비]의 두 단어가 [와]라는 연결 고리에 의해서 결합되는 순간이 바로 이 시가 태어나는 기점(起點)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바다와 나비를 결합시킨 것은 김기림이 처음은 아니다. [네르발]의 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종래의 '꽃-나비'에서 '바다-나비'의 낯선 관계항(關係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바다와 나비]는 그것을 동기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나비는 그게 바다인 줄 몰랐기 때문에 바다 위를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다는 말은 그 나비가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들처럼 순수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불에 덴 일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불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것을 손으로 잡으려 한다. 그 무구(無垢)한 눈과 순수한 의식으로 바라본 불꽃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것과는 전연 다른 불꽃일 것이다. 바다의 두려움을 모르는 나비의 눈 앞에 나타난 그 바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배가 깨지고, 상어의 이빨이 번득이고, 태풍이 산호초를 뒤엎는 그런 바다가 아닐 것이다.

나비가 날고 있는 그 바다는 즉물적(卽物的)인 바다, 어떤 선입견이나 관습에 오염되지 않은 의미 이전의 그 바다일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유리 바다와도 같이 투명한 바다이다. 바다와 나비의 대조 자체가 극소(極小)와 극대(極大), 점(點)과 면(面), 그리고 가벼운 공기와 무거운 물의 만남으로 초현실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실제로 그 나비가 철없는 어린 나비라는 것은 일련의 시를 좀더 구체적으로 기술한 다음 연을 보면 알 수 있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 공주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어린 날개' 그리고 '공주처럼'과 같은 표현들은 그 나비가 이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어린 나비임을 암시한다.

그렇게 순진한 어린 나비이기 때문에 거대한 바다 전체를 순식간에 '청무밭'으로 바꿔놓을 수가 있다. 이 지구의 공간은 바다와 육지로 되어 있으며, 모든 생물 역시 그 양대 영역에 의해서 분할된다.

'칼 슈미트'는 <육지와 바다>에서 [우리는 육지의 아들인가, 바다의 아들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대립적 의미로 세계의 전 역사를 읽어간다. 그런데 김기림은 [바다와 나비]에서 어린 나비 한 마리로 바다-육지의 그 거창한 대립 체계를 해체시키고 역사의 공간, 정치의 그 공간을 시적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섬[島]이란 말이 시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를 바다-육지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나비가 바다 위를 나는 상상은 바다 가운데 육지가 있는 섬을 생각하는 것과 닮은데가 있다. 김기림의 나비는 극소화한 섬이며, 환상으로 변한 섬들의 파편인 것이다.

바다와 나비의 병치(竝置)는 색채의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흰 나비와 청무밭의 백(白)-청(靑)의 색깔은 청룡 백호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주를 나타내는 한국인의 오방색(五方色) 체계의 전통적 색채 대응과도 통하는 것이다. 바다-갈매기, 꽃밭-나비의 낯익은 배합이 이렇게 바다-나비로 짝이 바뀌어지면 바다에서는 온통 꽃향기로 물들고, 나비의 어린 날개에는 하나 가득 해조(海潮)의 짠바람이 배게 된다. 바다 위를 나는 나비는 꽃잎 그늘에서 쉬고 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파도 위에 내릴 수 없는 그 나비는 온종일 날아다녀야 하는 동적(動的)인 나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꿀을 따는 노동과는 관계 없는 무상(無償)의 비상(飛翔)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비가 꽃보다도 바다와 결합되었을 때 더욱 시에 가까워지게 되는 이유이다. '공주'는 노동하지 않는다. 공주가 지치는 경우는 오직 무도회에서 춤을 출 때 뿐이다. [공주처럼 지쳐서]라는 표현은 바로 나비의 비상을 춤에, 그리고 바다를 무도회장에 비기는 은유의 역할을 한다. 이것이 나비가 꽃밭 보다도 바다와 결합되었을 때 더욱 그 춤이 춤다워지는 이유이다.

나비-바다의 결합이 이 시의 마지막에 이르면 나비-하늘로 그 병치법(竝置法)이 변화한다. 뭍으로 다시 돌아온 나비가 만나게 되는 것은 여전히 꽃밭이 아니라 하늘의 초생달이기 때문이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바다와 나비의 공간은 시간적인 좌표를 얻게 된다. 그것은 그냥 바다가 아니라 3월의 이른 봄바다이다. 그리고 나비 역시 꽃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온 철이른 나비이다. 이런 계절감을 전제로 했을 때 비로소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라는 종구(終句)가 현실감을 얻게 된다. 우리는 벌이나 개미허리라는 말은 들었어도 나비허리라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비의 육체성을 강조하려면 그것은 아무래도 나비의 날개가 아니라 허리여야 한다. 그리고 의상을 걸치지 않은 맨살의 느낌을 주는 것도 역시 날개가 아니라 허리이다. 그리고 그 허리는 2연의 날개와 짝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다의 물결에 날개가 저렸던 나비가 3연에서는 하늘의 초생달에 그 허리가 시린 것으로 묘사된다. 예민한 시독자(詩讀者)라면 바다가 하늘로, 물결이 초생달로, 그리고 날개가 허리로 병렬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바다와 밀착된 나비는 이제는 하늘과 맞닿는다. 삼월달 바다가 아니라 삼월달 밤하늘의 초생달은 얼음처럼 차갑다. 허리가 [시리다]라는 촉각과 온감각은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보다도 훨씬 대상과의 접촉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봄볕과 봄바람의 따뜻한 한늘에서 나는 나비가 아니다. 새파란 초생달 빛과 그 냉기를 품고 있는 참으로 낯선 나비이다. 그래서 시적 상상력으로 채집한 언어의 나비 표본실에는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진귀한 신종 나비 한 마리가 더 진열된 것이다.

시가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DNA의 결합에 따라서 그 형태와 성격이 다른 무수한 생명체가 생겨나는 것처럼, 시인의 언어 역시 그 배함과 구성의 변화에 의해서 색다른 영상과 의미의 생명체를 낳고 있는 것이다.

기상도(氣象圖)

- 세계의 아침

비늘

돋힌

해협(海峽)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傲慢)한 풍경은 바로 오전 칠시(七時)의 절정(絶頂)에 가로

누었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香水)를 뿌리는

교당(敎堂)의 녹쓰른 종(鍾)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렴으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輪船)을 오늘도 바래 보냈다.

국경 가까운 정거장(停車場).

차장(車掌)의 신호(信號)를 재촉하며

발을 굴르는 국제열차.

차창마다

[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본국(本國)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紳士)의 가족들.

[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리다]

선부(船夫)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汽笛)에 맡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전서구(傳書鳩)들은

선실의 지붕에서

수도(首都)로 향하여 떠난다.

…… [스마트라]의 동쪽. …… 5 [킬로]의 해상(海上) …… 일

행 감기(感氣)도 없다.

적도(赤道) 가까웁다. …… 20일 오전 열 시. ……

({기상도} 제1부, 1936)

<감상의 길잡이>

1930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시작(詩作)을 시작한 김기림은 이양하, 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 특히 I.A.리챠즈의 문학 이론을 도입하여, 이를 근거로 해서 모더니즘 문학 운동을 선언하는 한편, 그 이론에 입각한 시 창작을 시도하였다. 그는 [현대시의 기술], [현대시와 육체], [오전(午前)의 시론] 등의 주지적 시론을 발표하면서 시 창작을 병행하여 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어의 기교적 측면에만 관심을 갖는 일부 모더니즘 시인들을 '기교주의'라 비판하면서 내용과 형식이 조화가 된 '전체시'를 창작할 것을 주장한다. 그의 장시 <기상도>는 바로 김기림 자신이 주장한 '전체시론'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의도적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이 시는 자신의 모더니즘 이론을 충실하게 이행하려 한 시이며, 현대시가 지녀야 할 주지성과 회화성, 그리고 문명 비판적 태도 등을 동시에 시도하여 본 작품이다. 따라서 이 시는 그 시적 형상화의 면에서보다는 시사(詩史)적인 면에서 더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전체가 7부 400여행으로, 그 전모는 '①세계의 아침 ②시민 행렬 ③태풍의 기침(起寢)시간 ④자취 ⑤병든 풍경 ⑥올빼미의 주문(呪文) ⑦쇠바퀴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태풍의 내습과 강타'라는 극적 상황 설정을 통해 세계 정치의 '기상도'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태풍'의 진행 과정을 중심으로 볼 때, ①,②는 태풍 이전 ③,④는 그 발생과 진행 ⑤,⑥은 태풍 내습 후의 파괴된 풍경 ⑦은 기상의 정상 회복에 대한 시인의 희망을 서술하고 있다.

윗 부분은 이 중의 제1부 '세계의 아침'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태풍 내습 이전의 건강한 세계의 아침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바다'·'갑판'·'정거장' 등을 배경으로 한 세계 시민의 행복한 裚이 '아침'이라는 신선한 이미지로 제시된다. 따라서 윗 부분에서는 어떤 상징적 의미보다는 첫 연에서 보듯 이미지즘의 형태와 같은 기법적인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이와 함께 과도한 외래어의 사용이 초래하는 모더니즘의 부정적인 특성도 엿볼 수 있다.

시 전체로 볼 때, 이 시는 '이야기 시(narrative poem)'가 아닌 형식으로는 처음으로 시도된 장시라는 형식적 의의를 지니며, 내용적인 면에서는 '태풍의 내습과 강타'라는 상황이 알레고리(allegory)적 수법에 의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상징화되어 있어서, 문명 비판 의식이 당대의 역사적·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과도하게 흩어져 있을 뿐 이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시적 통일성의 장치가 부족하고, 그 이미지도 시인의 관념 속에서만[세계지도 위에서만] 펼쳐지고 있어서 시적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물론 김기림의 이러한 결점은 차츰 극복된다. 이 시 이후 발표한 시들을 묶어 낸 시집 {태양의 풍속}은 점차 이미지즘 위주의 시작 경향을 보여 주고 있으며, {바다와 나비}에 실린, 해방 전의 <바다와 나비>, <요양원>, <겨울의 노래> 등의 대부분의 시들은, 모두 서정과 지성이 결합된 선명한 시각적 영상을 보여 주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연가(戀歌)

두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오면서

내 마음 어느 새 그대 곁에 있고나

그대 마음 내게로 온 것이냐

육로(陸路)로 천리(千里) 수로(水路) 천리

오늘 밤도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이 둘

가로수 설레는 바람소리 물새들 잠꼬대……

그대 앓음소리 아닌 것 없고나

그대 있는 곳 새나라 오노라 얼마나, 소연하랴*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 희망이 피어

그대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우리라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으리라

자빠져 김나는 뭉둥아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새나라 언약이 이처럼 화려커늘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

({중앙신문}, 1946.4.27)

* 소연(騷然)하다 : 떠들썩하다.

* 뭉둥아리 : 몸뚱어리.

* 달다 : 몸이 화끈해지다.

<감상의 길잡이>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의 결성에 가담하여 '전국문학자대회'의 준비 위원으로서 [우리시의 방향]이라는 주제 강연을 발표한 바 있으며,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이자 시부 위원장의 지위에 오른 김기림, 그의 돌연한 사상적 전향은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대단히 이채로운 사건에 해당한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론의 주창자로서 임화(林和)와 이른바 '기교주의 논쟁'을 벌이면서 많은 순수주의 시인들의 이론적 지주의 역할을 맡았던 그의 전향은, 소설에서의 이태준(李泰俊)의 전향과 함께 해방공간의 문학과 정치와의 함수관계를 다시 한번 환기시켜 준다. 이태준은 그의 소설 <해방 전후>에서 주인공 '현(玄)'의 입을 빌어 자신의 전향을 합리화시키고 있거니와, 김기림은 위의 [우리시의 방향]이라는 강연에서 "시인은 자유와 정치를 지키는 넓은 동맹군의 일익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여 정치와 시의 적극적 결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방공간 김기림 시의 대부분은 그 전의 작품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강한 정치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연가>는 이 시기 그의 시로서는 드물게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표현이 적고 서정시의 여백(餘白)까지도 맛볼 수 있는 정제된 미감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육로로 천리 수로 천리'를 건너 드디어 임을 만난다. 그들은 '새나라'에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왔지만, 여전히 식민지 치하에서의 유랑의 상처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즐거운 밤에서조차도 놀라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을 꾸고 '그대 앓음소리'는 삼라만상의 소리로 들려 올 정도로 병이 깊다. 그러나 '새나라'로 오는 즐거움에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희망이 피'고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운 것도 전혀 흉잡힐 것이 아니다. 이제는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아,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을 수 있고, 사랑이 뜨거우면 '이리도 피해 달아'날 정도로 서로에 대한 확신이 선다. 이러한, 헤어지지 않으리라는,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사랑의 언약은 '새나라'를 맞이하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것을 시적 자아는 마지막 연에서 '새나라 언약이' 화려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럴 때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라고 하며 죽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비교적 상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새나라를 맞는 시인의 감격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어떠한 정치적 색채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서정시의 묘미는 이처럼 그 취의(趣意)를 직설적으로 표백하지 않는 내면화의 미감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김기림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인 들의 작품 중에 그러한 시가 오히려 드물 정도로, 해방공간의 문학 외적 환경은 비관적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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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선생언어논술
글쓴이 : 문선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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